기병대 정치의 종말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드러낸 민주당의 한계

(이 글은 슬로뉴스(http://slownews.kr/1680) 에 기고된 글입니다) 


565·15 정부통령 선거 유세시 신익희와 장면이 순천 근처의 갯마을 국민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장면은 아이들을 웃기려고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친구 아이들이 짜장면 짜장면하고 놀렸다. 그건 내 이름이 장면이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전혀 웃지 않았다. 짜장면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짜장면은50년대 중반까지도 아직은 대중화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56년부터 짜장면 대중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영미에 따르면, “자장면이 값싼 음식으로 밥에 대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5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미국산 잉여 농산물 때문이었다. 미국산 잉여농산물은 한국 곡물 생산량의 40%를 차지하였으며 그 가운데 밀이 70%를 차지했다. 따라서 밀가루값은 쌀값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쌌으며, 화교들은 싼 값에 자장면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짜장면 대중화는 결코 반길 일이아니었다. 미국산 잉여농산물은 한국의 농촌 경제에 치명타였기 때문이었다. 56년부터 들어온 미국 원조는 모두 농산물이었다.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50년대편, 3, p.69~70.


 1. 왜 패배인가

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많은 이들을 멘탈붕괴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조선일보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수 확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민주당의 실책으로 졌다는 한명숙 이하 지도부와 친노 계열에 대한 문책론이 대두될 수 밖에 없는 결과였다. 20106월 지방선거 결과에 비춰봤을 때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20106.2 지방선거는 천안함 폭침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제외한 거의 지역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2008년 수도권을 완전히 뺏긴 18대 총선에서도 유지했던 강원도 영서 지역과 충청북도에서 새누리당이 대거 약진한 것은 수도권+충청+호남+강원 일부의 지역연합이 마침내 붕괴되었다는 얘기였다. 이른바 민주-진보 연합세력은 수도권과 호남에 고립되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을 패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박근혜 대세론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보수 세력의 정치적 대표자로 복귀해 일거에 친이 세력을 대거 내치면서 박근혜당으로 구 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선거 불패신화를 꼽아야한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할 경우 박근혜의 리더십은 약화되며, 조직 장악력이 뒤떨어지는 박근혜의 특성 상 필연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는 경기 동부-강원-충청 일대 등 농촌 지역를 확고하게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하게됐다. 더구나 보수 세력의 여유있는 승리는 이명박이 기반한 뉴라이트 담론에서 벗어나 보수의 재구축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박근혜가 총선 다음날 새누리당이 또다시 구태로 돌아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각오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을 다 끌어안고 함께 가겠다고 말한 것은 보수 세력의 리빌딩(rebuilding)’을 계속 해나가면서 대선을 준비해나가겠다는 사실상 출마선언이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의 비교. /출처: 경향신문

 


 

2. ‘기병대 정치의 종말


떻게 해서 민주당은 패배하게 됐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민주당은 선거 운동 자체를 못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즐겨 이용하는 웬만치 교육받고 소득을 거두고 있는 도시 중산층에게만 집중한 채 지역-장년층-중하계층-농촌 등에서 지리멸렬하다 시피한 행태를 보여줬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용민과 미권스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다. 결국 스윙보터(swing voter)가 많은 지역에서 민주당은 대부분 한나라당에게 따라잡혔다. 서울과 수도권의 2010년 구청장 선거 결과과 2012년 총선 선거 결과를 비교하면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서울과 수도권 20,30대의 열광적인 투표 참여를 이끌어 냈지만, 그 뿐이었던 셈이다.

 


2010년 지방선거까지만 해도 ‘반MB’ 깃발만으로 선거 승리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박근혜가 ‘쇄신’으로 ‘탈MB' 하겠다는 선언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출처: 동아일보(앞), 조선일보(뒤))


 하지만 민주당의 취약성을 한명숙 체제의 무능함에 있지 않다. 기실 따지고 보면 민주당과 범야권의 정치는 기세에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별 게 없었다. ‘독재자’ ‘도탄에 빠진 민생’ ‘강부자등 몇 개 깃발을 걸어놓고 MB'만을 외쳤던 것이 현 정치세력의 주소다. 이러한 깃발을 치켜들면 어디에선가 기병대가 출현해서 한나라당 조중동 재벌 강부자들이 방어하고 있는 진지를 돌파한다는 것이 이명박 취임, 정확히 이야기하면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민주-진보 세력의 작태였다. 1) 대중들의 MB에 대한 불만이 치솟고 2) MB의 실정을 누군가가 고발하거나,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3) 여기에 대해서 MB와 보수 세력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막으면 4) 외부에 있는 세력이 강력한 기병대를 끌고 와서 민주-진보 세력을 구원해주는 구도 였던 셈이다. ’기병대 정치라 부를만한 행태가 반복되어왔던 것이다.

 

2008년 촛불 시위 당시의 정의구현사제단,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일단의 고발적 지식인, 2011나는 꼼수다’, 2012년 강정 마을 활동가들과 파업에 나선 언론사들, 총선 기간 중에 KBS노조에 의해 폭로된 민간인 사찰 의혹 등 주요 국면에서 민주-진보 세력이 자체적으로 만든 조직은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지도부라 부를만한 이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은 이들 기병대에 의존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한 정치 행태가 한계에 부딪친 것이 이번 총선이다.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의 장악은 위에서 언급된 상황들이 표방하고 있는 반독재 민주화 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운동에 열광하는 정치 고관여층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으로 간주되기도하는 정치 저관여층까지 설득하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대중들의 열망과 이해관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또는 프레임)과 지역 현장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면 사회경제적 조건과 역사적 과정으로 형성된 다양한 대중 집단이 묶어 하나의 단일한 저항 주체로 주조된 역사적 블록(historical block)'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며 만들어나가는 현대의 새로운 군주(modern prince)'가 필요한 셈이다. 민주당의 패배는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방기한 그들의 정치 행태의 필연적 결과다.

 

3. ‘극장만을 원하는 불임의 민주당


민주당이 이토록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온 원인은 1) 고유한 정책 프로그램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친노 유훈 통치 2) 도시 중산층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의 한계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에 대중은 자신들의 민주화정치를 지켜보는 관객일 뿐이다. 자신들의 공연이 역사의 정당성을 그대로 잇고 있기 때문에 관객 또한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멘털리티다. 하지만 여기에 그 관객들이 다층적인 이해관계와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집단이라는 것은 무시한다. 그들은 관객은 자신들이 기반하고 있는 도시 중산층, 그것도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중산층으로 상정한다. 그들의 정치는 이 글 맨 앞에 소개한 1950년대 민주당의 정치와 닮았다.


있는 집 자식들이나 일년에 한두번 읍내에 나가 짜장면을 사먹던 당시, 짜장면이 어린 시절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야당 당수 장면. 1920년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천주교 신자다.


민주당의 정책 프로그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은 다양한 복지 정책’ ‘재벌 개혁’ ‘FTA 재협상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들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되어 있지 못하고 모두 표면적인 구호로서만 기능한다. 강경한 구호 뒤에 빈약한 콘텐츠와 정책의지라는 상반된 결합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공존하는 셈이다. 제대로 된 동원이나 대중의 각성도 일어나지 못한채 오히려 보수 세력의 반격에 당하기 좋은 형국에 스스로를 포지셔닝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난 핵심적인 원인은 친노 세력에 구체적인 정책적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경제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되었던 것들이다.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은 한미FTA에 대해 어쩔수 없이 하게 되는 도전이라며 정확한 상황 인식 위에 합리적인 토론이 있어야(김병준,‘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pp.19)”한다고 말한다. 정태인의 주장과 달리 한미FTA는 김현종이나 김종훈 등 외교통상관료의 독단적인 정책 제안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핵심 정책과제로 삼아온 것에 가깝다. 친노 세력은 여기에 대해서 ISD 반대라는 어정쩡한 입장만을 고수한다. 노무현의 과오를 인정하는 반대와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는 찬성론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논거 없이 이명박 정부만을 공격하는 민주당의 입장은 보수 세력의 역공을 받기 충분했다.


다른 사회 경제적 프로그램도 제대로 갖추어진 게 없었다. ‘복지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어떻게 재원을 조달해 어떤 식으로 정책을 펴고, 이것이 어떤 혜택을 유권자들에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존재하지 못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미시적 보수성이다. 입으로 개혁을 떠들어대지만 경제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한나라당의 세금폭탄론에 대한 대중의 동의, 지주와 노동자간의 급격한 자산재배분을 야기하는 부동산에 대한 승인, 황우석에 대한 열광을 지나 이명박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인들은 근본적으로 집단적인 수준의 경제적 규율에 익숙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힘있는 자의 규칙을 따른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8년 자연적으로 발화한 촛불 시위는 그로인한 사회경제적 압력이 임계 지점까지 와 와있다는 하나의 시그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들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구질서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기에 대해서 거의 고민이 없었다. 이명박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자신들의 반성도 부재했음은 물론이다.


"안보와 경제, 한미동맹 등 보수층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갖춘 사안을 야당이 먼저 제기했다가 새누리당이 '말 바꾸기'로 역공하면서 되치기 당한 형세"라는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의 코멘트는 곱씹어볼만하다.


이러한 모호한 입장은 민주당과 민주당의 주지지층이 대기업-부동산-저임금이라는 3각 편대로 짜여진 현재의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금 노동자들로 구성된 그들은 현재 사회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민주당의 핵심인 구 386들은 현재의 사회 경제 질서의 마지막 혜택을 입은 이들이다. 물론 이들, 특히 현재의 서울 지역 30대 중산층들은 사회경제적 압력을 강하게 느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안정된 경제적 지위를 원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기회주의라 할 만한 모호성이 지도력 약화의 주된 배경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한명숙 전 대표가 제주도 해군기지와 FTA 등 다양한 이슈에서 제대로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개인의 역량 부재 때문만으로 볼 수 없다. 문재인과 김두관 등의 잠재적 대선 후보들은 그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있을 까. 그 이전에 친노 세력 내부의 컨센서스에서 그러한 이슈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 것인지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것이 핵심 원인으로 보아야한다.

 

4. 도시 중산층에 갇혀

김용민을 지지하기 위한 ‘삼두 집회’ 현장. 서울 광장에 모인 그의 지지자들의 연령대와 성별 구성은 많은 것을 드러내준다. /출처: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실 하나는 친노 계열이 수도권 중산층으로 국한된 지지층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타깃으로한 일종의 운동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성근이 주도해서 조직한 국민의 명령이나 김어준이 나서 만든 나꼼수미권스야 말로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자신과 다른 사회경제적 지위와 경험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지지층으로 포섭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다. 이는 그들이 지향하는 운동으로서의 정치에 내재한 치명적인 결함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는 이들이 없었다.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들의 모호하고 기회주의적인 입장은, 농촌-지역-장년층 등과의 정책 연합의 형성을 가로막는 요소다. 게다가 그러한 콘텐츠의 거세는 그들의 캠페인이 오로지 정치 개혁에만 치중하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민주당이 제대로 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해 이러한 외부의 운동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운동 정치는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과 중도층의 이탈, 그리고 지역 기반의 상실이라는 두 가지 역효과를 가지고 왔다. ‘기병대 정치에 의존해왔던 민주당의 행태가 결국 총선을 맞아 비극적인 방식으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4-1. ‘인물은 지역 감정을 돌파할 수 있나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새롭게 부산에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총선 켐페인은 민주당의 무기력함을 잘 보여주는 예다. 소위 지역감정은 세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작동된다. 1) 전라도 지역에 대한 유사 인종주의 가 군걷히 대중적 차원에서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2) 지역 명문고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 출신 엘리트 간의 자리 다툼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떡고물 이 동력이 된다.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의 배경에는 3) 서울과 지방 사이의 현격한 격차 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일종의 유사 인종 차별이 곁들여진다. 정치공간에서 경상도 지역민들에게는 백인이라는 환상이 경상도 지역 주민들에게 씌워진다. 사실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들은 인종차별은 백인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심리적인 보상 임금을 안겨주기 때문에 공고해질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부의 가난한 백인 소작농들에게 나는 흑인과 다른 고귀한 백인이야라는 환상을 불어넣어, 그들을 불만을 억누르고 기득권 백인 지주의 편에 서도록 만들었단 얘기다.


이는 2)번 항 때문에 증폭되고 유지된다.TK 혹은 PK가 장악한 중앙 정계 혹 고위직은 이들 지역이 그들 덕에 개발되었구나라는 생각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자생력 없는 지방이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네 지역 출신 엘리트들을 무조건 지원해 주어야한다. TK PK의 정당 한나라당이 그 대상임은 물론이다.게다가 70년대 박정희의 집권 이후 공고해진 경상도-중앙정계의 연결과 그로 인한 엄청난 경제발전 신화는 이를 지지하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




문재인이 지휘한 부산 지역 총선 캠페인은 노무현의 적자라는 점만을 강조한다는 것에서 근본적으로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민주당 지도부의 뚜렷한 대중 동원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부산-경남-울산 지역의 정당별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한나라당 지지세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뚜렷한 개발 공약마저 내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의 부산 지역 총선 켐페인은 오로지 저축은행 사태와 신공항 유치 무산으로 형성된 반여권 분위기를 틈탄 인물 선거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과연 이들은 영남 지역의 강고한 지역감정을 내파(implosion) 할 수 있는 역동원 캠페인을 구사할 수 있을까

 

4-2. ‘포크 배럴지역 정치의 무시

 

현대 한국 지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중앙 정부의 예산을 각 지역으로 배분하는 포크 배럴(pork barrel)'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현격한 격차는 이러한 포크 배럴의 중요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 시절 충청 지역을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다양한 지역 개발 사업을 벌였던 이유도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예의 지역 인물론이 세를 얻는 것도 포크 배럴 정치와 연관된다. 중앙 정계와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출향 인물이야말로 지역에 번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민주당의 이번 선거 패배 원인 가운데 하나는 강원과 충청 지역을 거의 방기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지했던 충북과 강원 일대를 새누리당이 석권하다시피 한데에는 민주당의 포크 배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큰 원인이었다. <참고: 강원도 0석 문제있었다(내일신문),>


문제는 친노의 지역 정치 무시가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일반화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자당 정치인들의 1) 인사청탁을 무시했고 2) 정치자금 원조를 거부했으며 3) ‘선심성지역 예산 집행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3)번이다. 포크 배럴 정치를 벗어나는 것을 일종의 정치 개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 유권자 입장에서 보자면 표가 모이는 서울 등 수도권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을 비춰질 수 밖에 없다. 강원도 영서 지방에서 박근혜 바람이 불었던 이유는 민주당이 강원도를 홀대한다는 여론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여론이 일치감치 감지되었지만 민주당 지도부와 한겨레 등 친민주 성향의 매체들은 숙고하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동교동계 등 호남 지역의 구 민주당 파벌의 세가 축소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5. 새로운 대중 정당은 가능할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민주당의 최대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정치인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노 계열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도시 중산층의 허약함과 기회주의에서 연원한다.


현재 민주당의 과제는 대중 정당으로서 새로운 위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호남 기반은 날로 약해지고 있으며, 충청과 강원 등은 지역 연합으로서 동맹 관계를 상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너무나 불분명한 도시 중산층에게만 기대고 있고, 그들의 망딸리떼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민주당의 문제다. 그들은 구체적인 대중 동원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역량과 인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점은 현재의 정치 지형이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박근혜가 주창하고 있는 복고적 수동 혁명이 어디를 향하든, 민주-진보 연합이 주도권을 다시 잡기란 어렵다. 오로지 근본적인 수준에서 대중 정치 세력을 재주조하는 것만이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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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寒士

정운찬에 대한 늦은 포스팅.

정운찬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우석훈 블로그의 글 ' 정운찬 총리 어떻게 볼 것인가 '와  '사람들이 정운찬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잘 정리해주고 있음.자민당식 대연정이나 케인스 좌파로의 전향등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정치적 의도와 영향에선 발군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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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많이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정운찬으로선 손해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이명박계에 포스트 이명박으로 나설 만한 인물이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가 원인의 핵심이다.박근혜에 대한 대항마로 이야기되는 게 정몽준 한 명일정도로 한나라당 내에서 차기 구도는 좀체로 그려지지 않는다.당장 당 대표를 맡을 만한 사람도 없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수도권과 영남에서 지구당 조직은 박근혜계가 점차 장악해가고 있다.특히 영남은 TK, PK할것없이 완전히 박근혜에게 넘어갔고 수도권도 얼마전 서울 시당 위원장에 친박게 권영세가 됐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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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조직의 세력 분포. 출처: 조선일보


인물도 없고 조직도 없고 게다가 현 대통령 이명박은 정말 인기가 없다.대선을 물론이거니와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을 전후해서 이명박계가 한나라당 내에서 완전히 밀려버릴 가능성도 크다.

이명박계로서는 거의 전부를 내주더라도 무언가 획기적 전환이 필요한 셈이고, 이게 청와대 내의 어느 모사꾼이 정운찬을 땡겨오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정운찬 카드를 가지고 이명박계를 기본 세력으로 하고 한나라당에서 나름 중도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인물들을 끌어모은 뒤, 다른 잡다한 외부세력을 추가하면 박근혜계와 한 판 해볼만하다.물론 정운찬이 No.1 이 되니 대선 후보 욕심이 있던 자들이야 실망하겠지만, 현재 친이계 내에서 이것저것 따질 게재도 아니고 대선 후보에 나갈만한 사람도 없다.

정운찬이 한나라당내에 들어간 이유는 따지고 보면 이런 사정의 친이계에서 자신이 차기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일터다.

2.
1)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후로 한나라당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리고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내년에도 선거에서 죽을 쑤고 이명박이 실정을 거듭한다면 정운찬으로서는 또다시 갈등할 수 밖에없다.

하지만 이 경우 정운찬은 한나라당 내에서 세력을 규합할 수 있게된다.이회창이 YS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운찬고 MB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선거결과에 절망한 세력을 끌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그렇지 않고 선거에서 적당한 성적을 거두면 그대로 대선후보로 가는 길을 택하겠다.

2)
언제나 정운찬 같은 인물을 총리로 앉힐 때 문제는 이명박의 퍼스낼러티다.이명박은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된 2인자 혹은 역할을 분담하는 인간을 두어본 적이 없다.권력을 어느정도 나누어주는 것에 대한 경험도 없고, 그럴 의향도 없다.강만수와 윤증현이라는 올드보이들을 재경부장관에 앉히고 한승수를 총리로 행동대장 비슷한 역할을 주문하는 건 이때문인데, 과연 정운찬에게 어느정도 ‘실세 총리’로서 role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분명 지금 이 판을 기획한 사람은 정운찬에게 대선후보로서 약속과 함께 실세 총리로서 권한까지 약속했을 터이기 마련이다.

이명박은 정운찬에게 다음과 같이 ‘쇼부’를 친적도 있는데, 과연 이명박이 호랑이 새끼를 키울 배포가 있는 대인배일까.


이 대통령과 정 내정자 사이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시절 대권을 꿈꾸며 자신의 가장 강력한 '잠재적 라이벌'로 당시 정운찬 서울대총장을 꼽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 총장이 당시 '3불정책'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고, 정 총장은 또 자타가 인정하는 경제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서울시장은 한 교수를 통해 정 총장과 만나기를 희망했고 만남이 성사됐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은 정 총장이 전혀 예기치 못한 말을 했다. "총장께서 대선에 뜻이 있다면 내가 출마하지 않고 총장을 돕겠다"고 했다. 이 시장다운 '저돌적 선공'이었다. 정 총장은 "아직 총장임기가 남아 있다. 지금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고, 이에 이 시장은 "그러면 내가 대선에 나서겠다"고 했다고 당시 모임에 있었던 한 교수는 전했다.

이렇듯 이 대통령은 일찌감치 정 총장을 잠재적 경쟁자로 생각했었고, 이같은 긴장감은 그후 정 총장이 주변의 빗발 같은 권유에 대선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2007년 4월30일 불출마선언을 할 때까지 늦춰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총장은 이에 앞서 대선 출마를 고심하던 기간 중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신랄한 독설을 해, 두 사람 사이에는 감정적 앙금이 생기기도 했다.

뷰스앤뉴스, 이명박-정운찬, 알려지지 않은 '긴장의 역사'

3)
강만수-윤증현 이 친구의 콤비플레이에 정운찬이 어느 정도로 움직일지도 의문이다.정운찬이 권력투쟁에서 이기려면 두 사람 모두 쫓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현재 재경부 장관에 적합한 카드가 별로 없다.

또 현재 정부가 부딪친 문제가 부동산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지금까지 강남 부동산 폭등은 물론이고 전세가 급등은 언제나 얼마 안가 대중들의 무시무시한 반발을 불러왔다.다음과 같이 말이다.


1987년~90년간 땅값은 공업 지역을 중심으로 연평균 23.7% 아파트 가격은 20%가 올라 물가 상승률의 2~3배가 치솟았다.

특히 같은 기간동안 [전세 가격이 13~19%까지 올랐으며, 도시가구 주거비 상승률도 최고 26%까지 치솟아] 노동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켰다.노태우 정부의 재건축 요건 완화, 분양가 자율화 계획 언급 등은 투기를 더 자극했으며, 전세자 보호를 위해 1989년 12월 임대차보호법을 제정했으나 오히려 전세값을 더 끌어올리게 돼 [세입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주거불안, 산업 간 임금격차 등이 사회불안으로 연결되면서 1987년 마침내 [산업화 과정에서 누적되었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정치적 민주화 정세를 타고] 폭발했다.

노동쟁의는 1988년 발생건수가 줄어드는 등 잠시 수그러졌으나, 1989년 [노동쟁의 참가 인우너은 전해의 2배를 기록하는 등] 다시 급증했고, 1991년 주택 가격이 안정된 뒤에야 정상화됐다.

삼성경제연구소 CEO Information 제 402호/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삼성경제연구소 글을 손낙구가 인용하며 [ ]안의 내용을 가필함.

현재 이명박 정부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멘털리티는 경제=부동산, 부동산=강남 따라서 강남=경제 라는 등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타고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집권했다는 태생적 한계와, 현재 경제사회적 불만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어떻게든 틀어막을 수 밖에 없는 정책적 한게를 가지있고다.

하지만 주택공급 부족과 저금리라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파생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한 전세 불안과 부동산 가격급등은 사회경제적인 불만을 엄청나게 증폭시킬 수 밖에 없다.그리고 이는 차기 대권 후보를 노리는 정운찬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향후 만수-증현 콤비와의 권력투쟁의 장은 이 부동산 정책이 될 가능성이크고, 이 경우 청와대의 핵심 목표에 정운찬의 정치적 포지션은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우석훈이 이야기하는 케인스좌파로의 정책변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까닭이기도 하다.

3.

1.에서 이야기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이야기지만, 한국의 보수 세력은 단일한 이념과 조직이 부재하다.다만 재벌-강남-보수언론로 구성된 complex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있을 뿐 이를 어떠한 전통과 담론에서 풀어나가는 데 실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태우 이후 YS, 이회창, 박근혜, 이명박 등으로 쭉 외부인사를 수혈하고 그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징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지금의 정운찬 카드도 큰 틀에서 그 일환으로 봐야한다.

다만 정운찬이 저 보수 계보의 반대 진영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다.이는 보수세력 스스로 장기적으로 자민당식의 변화를 어떻게든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이해관계가 피해대중을 극단적으로 양산하는 것이기에 우석훈의 논조대로 확실히 언급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이미지상 저런 방향으로 가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에 대해 이대근은 적확히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실용 행보의 정치적 효과 때문인지 이명박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에는 예전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친서민 행보가 부자와 기득권에게 알짜를 다 넘겨주고 나서 서민에게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허구라고 하는 비판조차 이명박의 이미지를 높여 준다. 강부자 정권 시비 때와 비교해 보라. 친서민 정권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이명박이 엎드려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의 본질은 난폭한 시장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이며 개발독재시대 낡은 경제노선의 추종자라고 공격해도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지 못한다. ‘중도·실용 논란’이 그의 본질을 은폐하는 가림막 혹은 외부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지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데 완충지대를 무력화하고 이명박 정권의 근본을 공격하는 일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소리나는 인형이다. 아무리 때려도 아파하기는커녕 중도·실용·친서민이란 말만 반복할 것이다. 무조건 때리면 손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성능 좋아진 이명박과 맞서게 된 민주당이라면 긴장해야 할 텐데 지금 무얼하고 있느냐 하면, 바야흐로 과거로 내달리는 중이다. 이명박은 과거를 지워 자기 앞 길을 열고 있는데, 반대세력은 과거를 되살려 내느라 애쓰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생존시에는 그들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 조금이나마 고민하던 민주당이 그들 사후에는 유지·계승을 주장하며 다시 울타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스스로 기회주의자였음을 고백함으로써 또 한번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고야만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예상대로 갖가지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누굴 중심으로 뭉치라 했다느니하는 북한식 유훈통치, 동교동계니 친노니 하는 타임머신 정치, 노병은 죽지 않았다흘러간 물로 물레방아 돌리는 노병정치,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의 이 초현실성이 놀랍다. 지난 10년 정권에 대해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못했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재야 원로들도 이명박과는 싸우겠다며 민주통합 시민행동이란 걸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야 행동을 하겠다니! 너무 늦었다. 그들이 빚어내는 80년대적인 고색창연한 흑백의 풍경이 쓸쓸하다. 반대세력은 통제되지 않는 과거 회귀 본능이 있는가. 왜 과거로만 달릴까.

이대근,‘변하는 이명박, 변함없는 민주당’, 경향신문 9월 3일자

한나라당이 만약 친이와 친박으로 쪼개진다면 친이는 정운찬을 앞세우거나 적어도 중도 서민 실용을 강조할 것이다.이 때 친박으로서도 비슷한 대응을 할 것이다.둘 중 한 쪽이 완전히 당을 장악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정운찬이 세력을 만들어 나간다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스탠스는 어떻게 잡힐 것인가? 불행하게도 이대근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80년대식의 고과거에 집착하다가 이번에도 궤멸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 중 가능성 높은 것은 민주당 잔존세력이 중도실용서민을 내세운 정치세력에 흡수되거나 통합하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의 현재 지향점은 당장 지금의 정부 지지율이 아니라 2010년 6월부터 매년 있을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형성될 차기 집권 세력을 위한 것이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찌질거리다가 부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4.

문제는 이러한 정세에서 진보세력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이냐다.민노당이야 지금처럼 ㅂㅅ짓하다가 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진보신당도 제대로 된 정책 대응이 없다면 앞으로도 게속 이럴 가능성이 크다.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향후 부동산이 엄청난 뇌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 부동산 임대가격의 폭등과 특히 전세제도의 몰락은 그야말로 강부자와 그들에게 지대를 헌납하는 소작인의 구도를 극명히 대립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안겨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그나마 한 가닥 좁은 길을 어떻게든 내서 돌파해야하는 게 향후 진보정당의 숙젠데 과연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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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월요일(15일) 조선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지난 번에 썼던 글

노무현은 왜 실패했나? - 유시민·한명숙이 안되는 이유(上)

노무현은 왜 실패했나? - 유시민·한명숙이 안되는 이유(下)

과 겹치기에 가져와 본다.

한나라에 표 던졌던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그들이 다시 등을 돌렸다
홍영림 기자 ylhong@chosun.com 기자
입력 : 2009.06.15 02:35

넉달새 지지율 11.8%p 빠져 민주당으로 7.8%p 이동
"정치적 감성 예민한 세대 상황따라 쏠림 현상 심해"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정국' 이후 나타난 여야 정당 지지율의 역전에는 이른바 386세대로 불리던 40대의 기여가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란 의미의 386세대는 올해부터 이들의 막내인 1969년생까지 모두 불혹(不惑)의 40대에 접어들어 '486세대'가 되면서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조문정국' 이후 다시 진보 쪽으로 'U턴'한 셈이다.

미디어리서치·한국일보의 6월 6~7일 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은 지난 2월과 비교해 한나라당은 37.2%→27.3%, 민주당은 19.0%→29.4% 등으로 요동쳤다. 특히 40대에서 한나라당은 35.0%에서 23.2%, 민주당은 18.6%에서 26.4%로 10%포인트가량씩 등락했다. 지지율의 변동 폭이 5%포인트 안팎에 그친 20·30대와 계속 한나라당이 우세한 50대 이상에 비해 급격한 변화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5일 자체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다른 연령층에 비해 40대에서 여야 정당 지지율의 변화가 가장 심했다.

대통령에 대해서도 40대는 30대와 함께 지지 철회자가 가장 많았다. 갤럽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5%(2월)에서 26.7%(6월)로 낮아졌는데 연령별로는 30·40대에서 9.1%포인트씩 하락해, 20대(4.3%포인트)와 50대 이상(5.2%포인트)보다 하락 폭이 컸다.

386세대는 절반가량이 40대로 접어들던 2004년 중반 이후 보수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한나라당 지지율도 열린우리당을 추월했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선 갤럽의 투표자 사후조사에서 40대의 과반수(52%)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조문정국'을 계기로 이들의 지지성향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조문정국은 운동권 출신의 야권 386 국회의원들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야권 내부에서 "386들의 우경화로 야성(野性)을 잃고 있다"는 비난까지 들었던 386 정치인들은 노 전 대통령 죽음 이후, 야당의 강경노선을 주도하는 중심에 다시 섰다. 누구보다 강한 단결력과 투쟁성을 보여주며, 386세대 특유의 응집력으로 투쟁에 소극적이던 관료나 전문가 출신 야당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조문정국이라는 '쇼크' 때문에 486에서 '도로 386'으로 회귀한 40대의 정치성향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냐는 점이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이들은 정치적 감성이 가장 예민한 세대"라며 "정치적 상황이 평상 국면으로 돌아가면 다시 안정추구 성향을 보이겠지만 앞으로도 잠재돼 있는 세대 정서가 이번 같은 특수 상황 또는 선거 국면에서 다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도 "40대는 '안정과 변화'란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고 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경기침체 등으로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누적되고 있던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정당 지지성향의 변화를 촉발했다"며 "하지만 야당이 잘해서 지지율이 오른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구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6월 9일자 신문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이다.

다른 신문 여론조사 결과를 무려 일주일 뒤에야 해석한 기사가 실린 배경엔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는 위기감이 있다.

바로, 정권 창출의 열쇠였던 40대 도시 중산층의 지지가 이번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통해 완전히 철회되었다는 것. 앞으로 영남과 50대 이상으로 구성된 ‘집토끼’만으로 정국을 이끌어야한다는 부담 말이다.

아울러 이명박과 그 똘마니들에게 “도시 중산층을 끌어들일 정책을 만들어야 우리가 산다”는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사실 청와대나 조선일보 모두 흔들리는 도시 중산층의 존재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사교육 인구감소 부동산 문제에서 조선일보는 광우병 정국이 잠잠해진 이후 나름 무언가 켐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기득권을 해치지 않은 실현이 불가능한데다, 그나마 그런 생각을 하는 작자들의 세력, 능력, 그리고 명확한 인식부족이 문제다.

가장 비근한 사례는 곽승준의 ‘사교육 10시 이후 금지방안’이다.

대가집 도련님인 곽승준이 그나마 청와대 내에서 유연하게 사고하는 사람인데, 도련님 답게 일을 추진하는 방안이 찌질하다.어떻게 할지 감도 안오고 자기 세력도 없고 그러다가, 예전에 조중동하고 쿵짜쿵짜하던게 생각나 다시 한번 자기하고 말이 잘 통한다 싶은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모아서 이것 좀 실어달라고 요청한 것.

생각해보자, 사교육 같이 언론사들이 사업영역으로 생각하는데가 어디있나.게다가 학원 재벌만큼 한나라당에 돈을 많이 집어넣는데는 또 어디있나.그리고 이슈가 되었을 때 그걸 도대체 어떻게 밀어붙일건가.

여기에 대해 생각없이, ‘언론에서 좀 때리면 이슈화가 되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으로 저지른게 곽승준의 발언이다. 진압이 되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성패를 떠나서 그저 사교육 좀 규제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순진의 차원을 넘는다. 나름 외국서 경제학으로 박사밟은(물론 집안 돈으로 금칠한 박사학위 졸업장이겠지만) 인간이 한다는 생각이 고작 일시적 공급규제라니 한심하다.(좀더 깊게 들어가면, 최근 강남의 교육 수요는 사실 ‘분리’에 대한 열망이다. 빡센 경쟁을 피해 일종의 ‘귀족’ ‘명품’ 루트를 뚫어 명문대로의 직항로를 뚫는...이거 부터 생각없이 사교육 규제를 논하다니, 도대체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지..)

사실 그래서인지 조선일보 기사엔 “무엇을 해야한다”는 언급은 거의 없다. 저런 류의 기사에 '어떻게 해야한다'는 앙꼬없는 찐빵에 가깝다.조선일보가 저 기사를 실은 의도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단지 ‘폭풍우가 지나가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것. 이게 바로 보수의 현재 수준인 것이다.

p.s.
이럴때 18번으로 흘러나오는 ‘친박 지분 인정론’에 대해서 ‘단지 정치공학으로 무언가를 풀어보려는 꼼수’ ‘계파정치를 위한 명분’ 으로만 간주하는 것도 단편적인 생각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를 제외한 보수세력은 박근혜가 이명박을 도와줄 가능성을 거의 0로 보고 있을 거라는 점에서 그렇다.

차라리 ‘보수세력의 결집’이 유지되어야한다는 입장이 아닐까. 대선 정국에 접어들 때 까지말이다. 그때 박근혜든 누구든 보수세력의 단일한 대표자로 부각되면 된다.그때 까지 한나라당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보수는 총선에서 약진한 이명박게열 - 박근혜 - 이회창 3자의 내전 양상을 띌 수 밖에없다. 특히 이명박과 박근혜의 완전한 결별은 수도권과 영남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차근차근 접수하고 있다.이걸 보수언론들이 모를리 없는 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한나라 영남 조직, 친박이 대거 접수

부산은 완전장악, 영남권의 '박근혜 독주' 심화될듯

뷰스앤뉴스 2009-06-15 13:00:31

한나라당의 영남권 공식조직이 15일 당협위원장 교체를 계기로 친박 진영에게 대거 장악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계파 갈등 해소 차원에서 지난해 총선때 낙마한 친이계 원외위원장이 맡아 오던 18개 당협위원장을 당선 의원들로 교체하는 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이들 당선자들은 김광림 의원 등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친박계이며, 당선 지역 역시 대부분 영남권이다.

PK(부산경남)지역에선 김무성, 유기준, 최구식, 이진복, 박대해, 유재중, 김세연 의원 등 7명이 새로 당협위원장이 됐다. 이들 중 중립 성향인 최구식, 김세연 의원을 제외한 5명이 친박계 의원이며, 최구식, 김세연 의원도 지난 총선때 '박풍'에 힘입어 무소속 당선될 수 있어 친박에 가까운 의원들로 분류된다.

이로써 부산 정치권에선 전체 16명의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의화, 안경률, 김정훈, 장제원 의원 등 4명을 제외한 12명의 의원들이 친박이거나 친박에 가까운 중립성향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부산시당 위원장도 친이 김정훈 의원에서 친박 유기준 의원으로 교체되면서 부산권 한나라당은 친박계가 거의 접수하게 될 전망이다.

경남은 권경석, 김재경, 이군현, 김정권, 조진래, 조해진, 신성범 의원 등 7명이 친이, 김학송, 안홍준 의원 등 2명이 친박계로 분류돼 친이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경남도당위원장으로 내정된 이주영 의원과 제6정조위원장인 최구식 의원이 친박에 가까운 중립파로 분류돼, 친박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구경북(TK) 지역도 친박의 조직적 영향력이 급증했다.

대구의 경우 홍사덕, 박종근, 이해봉, 조원진, 경북에서는 김태환, 성윤환, 이인기, 정해걸, 김광림 등이 당협위원장 자리를 승계했다. 이 가운데 중립파인 김광림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친박이다.

이처럼 영남권 당협위원장직을 친박계가 대거 장악하게 되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및 차기 총선, 더 나아가 차기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에서도 영남권의 친박 영향력이 급증할 전망이다. 더욱이 현재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후보 중에서 박 전 대표에게 도전할만한 영남권 출신은 정몽준 의원 정도밖에 없어, 영남권에서의 박근혜 전 대표 독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이계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 지역 공천의 헤게모니를 쉽게 놓지 않을 게 분명해,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양계파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s.2 아래는 386의 정당 지지율 변화. 이명박이야 말로 386이 뽑은 대통령이라고, 노무현 노선은 실패한 노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다. 아울러 20대 보수화가 문제가 아니라 386보수화가 한국 사회의 문제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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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예전에 쓴 “노무현은 왜 실패했나? - 유시민·한명숙이 안되는 이유(上)”에 이어 서술한 것이다. 먼저 글에서는 노무현이 왜 실패했고 이명박은 왜 등장하게 되었나에 대해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연관시켜 논했다.아래 글에선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축’을 주제로 앞선 글을 기반삼아 이야기할 것이다.(사실 먼저 글은 안 읽어도 이 글을 읽는 덴 상관없다.)

4.
현재의 국면으로 여론이 완전히 뒤집혔을까?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3년 뒤 국회의원 선거와 4년 뒤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를 약속해 줄까? 지금 노짱의 적자로 이야기되는 유시민과 한명숙은 대선에서도 경쟁력이 있을까? 그리고 그 세력은 4~5년 후에도 지금의 위세를 계속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한겨레>가 6월 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음미하자.

<질문> 귀하께선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잘하고 있다 30.6%
잘 못하고 있다 57.7%
모르겠다 11.8%


<질문> 귀하께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장 큰 책임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1순위만)

노무현 대통령 자신 27.9%
검찰 22.7%
언론 15.5%
이명박 14.2%
한나라당 10.2%
민주당 0.4%
국민들 3.2%
기타/무응답 5.1%

<질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보복 때문이라는 의견에 공감하십니까

그렇지 않다 34.7%
그렇다 59.3%
모름/무응답 6.0%

<질문> 귀하께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셨습니까?

이명박 30.5%
정동영 19.6%
권영길 3.8%
이인제 0.4%
문국현 6.7%
이회창 7.4%
기타 1.3%
투표권 없었음 3.9%
투표안함 16.3%
말할 수 없음 10.2%

이명박+말할 수 없음 = 40.7%

투표안한 사람 빼고 계산할 경우 = 51%

실제 이명박 득표율 = 48.7%


<질문> 귀하께서는 어느 정당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한나라당 13.1%
민주당 17.4%
자유선진당 0.8%
친박연대 2.3%
민주노동당 3.6%
창조한국당 0.8%
진보신당 1.7%
없음 57.0%
모름/무응답 3.3%

결론적으로 하늘이 두 쪽 나도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현재 언제나 전국민의 30%다. 이들이 투표장으로 달려가고, 나머지 10%가 추가 된 게 이명박이 지난 대선 당시 획득한 표가 나온다.

다시 말해, 지금 아무리 ‘민주개혁세력’ 이 총궐기해서 얻게 되는 세력의 한계는 정해져 있다. 보수세력은 유동적인 10%의 일부만 잡아도 선거에서 승리한다. 너무나 간단한 공식이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과 그 일당이 ‘집토끼’ ‘산토끼’ 론이 나왔는 배경이다.산토끼는 기껏해봤자 10%에 불과하다. 핵심은 30%의 집토끼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토끼 잡는 것은 지금의 폭풍으를 피한 다음에 기회를 엿봐서 하면 된다. 이런 계산인 것이다. 너무나 단순무식한 논리지만, 그만큼 명확해서 집권만을 생각하는 그들로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의 다음 한탄은 위의 지지자 분포를 이해해야만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광장을 지켜보는 '관중'의 반응이다. 현 정권의 고충을 읽고 광장 선점 기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궁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광장에 32대 경찰버스로 차벽(車壁)을 쳤을 때 "민중의 지팡이는 이제 텅 빈 광장까지 보호하는군" 식의 조롱과 비슷하다.

어느 정권이나 적대 세력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세력은 예상되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지 않다. 진정 위험한 것은 친구들 및 심정적 방관자들의 변심이다. 정권이 동력을 잃는 것은 이들의 애정이 식고 등을 돌릴 때다. 요즘 그런 상황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현 정권을 찍은 집사람도 냉정해졌고, 친(親)대기업 정책의 '혜택'을 받은 대기업 임원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친구인 고위공무원조차 "대통령은 아직 기업인 같다"고 사석에서 말한다.

[중략]

지금 중요한 것은 광장 쟁탈전이 아니라 떠나는 민심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데 있다. 그런 그가 지도자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정위(正位)'를 잊고, 늘 잔기술을 찾는 격이다.

조선일보 6월 10일자 A34면 ‘[최보식 칼럼] 광장(廣場) 쟁탈전’

다시 말해 집권능력에 실패한 집토끼가 도망가지 않도록 단속을 잘하라는 얘기다.10만이 모이건 50만이 모이건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30%의 보수세력이 흔들리지 않게 단속하는 일이다.청와대의 주인이 이명박이건 박근혜건 아니면 그 누구건 이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이 게임구도는 민주개혁세력으로서는 필패의 구도다. 나머지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모아야만, 저 30%+α 와 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시민 한명숙 등 친노세력을 차기 지도자로 옹립하자는 논의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저기에 있다.친노건 친노 할애비건, 범민주당 계열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두가 대동단결하자는 것만이 승리조건이 된다.하지만 현재 그것이 가능한가?

앞선 글에서 필자는 1)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386세력은 ‘보수화’ 돼 5년 후 이명박의 당선을 이끌어 냈으며 2) 5년 동안 양산된 광범위한 ‘피해대중’은 노무현 정권의 몰락을 야기했다고 논했다. 즉 더 이상 2002년과 같은 ‘386신화‘는 존재할 수 없다. 노무현식의 민주개혁 노선은 이미 파산했고, 그 대중 동원력은 현격히 약화되어있다. 과연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독재가 싫으면 닥치고 유시민’이라고 주장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

일이 잘 되어서 예의 ‘개혁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치자. 그 뒤에도 예의 ‘닥치고 우리 지지하셈’ 이란 논리가 성립할 수 있을까? 현재 민주당 개혁진영의 사회 경제적 프로그램은 결코 대중의 불만을 막아낼 수 없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결국 그들의 집권은 5년 뒤 또다른 이명박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그 또다른 가카는 현재의 설치류를 능가할 가능성도 높다)

민노당을 위시한 일부 자칭 진보세력이 외치는 ‘비판적 지지론’ ‘선 민주화 후 진보’론의 약점은 여기에 있다. 현재와 같은 역관계에서 진보세력은 평생 비판적 지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개혁정치인‘이 집권하자 마자 배반당한 그들은 또다시 배반당할지 알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또다른 개혁정치인을 찍자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무슨 삽질인가?

따라서 현재 논의의 핵심은 어떻게 판을 부수고 새로 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새로운 대중정치세력을 구축할 것인가에 맞추어져야한다.그저 독재가 싫다고, 어떻게든 민주 정치인 시켜서 5년간 대통령 맡기면 되지 라는 사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당장 손해가 나더라도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게 현재 상황이이다.어차피 대통령 하나 바꿔봤자 제대로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장기적인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움직여야한다.

5.
따라서 현재의 고민은 “어떻게 집권이 가능한 대중정치세력을 구축하고, 그것을 유지시켜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한다.현재 정치권력을 틀어쥔 세력과의 단순한 대결만을 생각하면 악순환이 계속 될 뿐이다.

다음 대선에서 맞부딛혀야하는 세력은 지금의 이명박 주위 참모와 한나라당 친이계열과 사뭇 다른 사람 이념 조직이 될 가능성이 크다.영원한 대선 후보 수첩공부는 물론이고 오세훈 원희룡 남경필 류의 한나라당을 쇄신하는 신예가 나올 수도 있으며 최근 논의되는 ‘파시즘X'일 수 가능성도 크다.이는 대한민국의 보수라는 이념, 조직, 지지기반 이 모두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이회창의 패배 이후 보수의 혁신 시도는 모두 가로막히고 결국 이명박이라는 우파 포퓰리즘을 택할 수 밖에 없던 불임의 보수세력들에게 작금의 위기는 ’이명박 노선의 폐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로운 보수는 이명박을 희생양 삼아 대중의 지지를얻으려 할 것이다.

게다가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의 장악은 현재의 ‘반독재민주화 시위’와 완전히 격이 다른 문제다.현재 일어나고 있는 각 집단의 기동은 전적으로 ‘방어적’인 것이다.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이 상이해도 하나의 민주전선에서 공화국을 지키는데 애쓰면 된다.하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을 한다는 것은 완전한 이념 조직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거대한 대중 집단이 필요로한다. 그리고 그 공격과 기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든든한 후방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현재 분열되고 조직화 되지 않은 대중을 가지고 어떻게 공격을 할 수 있겠는가? 현 상황에선 절대 불가능하다.

결국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거/대/한/ 군/대/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면 사회경제적 조건과 역사적 과정으로 형성된 다양한 대중 집단이 묶어 하나의 단일한 저항 주체로 주조된 ‘역사적 블록(historical block)'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며 만들어나가는 ’현대의 새로운 군주(modern prince)'가 필요한 셈이다.

6.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까지 대안이라고 평가되어온 ‘개혁적 관점’ ‘친노적 관점’은 필패할 수 밖에 없다.계속해서 논의하고 잇는 ‘피해대중’의 등장이라는 지점을 음미해보자.

(노무현 집권기에 벌어지는 양극화-좀더 적확하게 계급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서술)

더구나, 한국사회에 구축된 계층상승의 길이 무너졌다는 걸 많은 이들이 느끼게 됐다. 특히 어느정도 잘 교육받고 사회에서 상층노동계급-특히 평범한 대기업 사무직들-에 속하는 이들에게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교육영역에서 머니게임화는 엄청난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점이 중요하다. 386 중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갖췄던 이들은 한국사회구조의 마지막 수혜자였지만, 그 외 다른 이들은 문이 닫히면서 엄청난 좌절을 느껴야했던 것이다.그리고 386세대의 후계자들은 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촛불시위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지지광고를 동원했던 수많은 인터넷 동호회들은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앞선 글 中


6-A.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엄청나게 심화되었는데 이는 결국 중산층에 끼지 못하고 추락하는, 어떠한 집단적 해결책도 모른 채 원자화된 20, 30대를 양산했다.(특히 20대)

현재 이들에게 있어 믿을 수 있는, 혹 사회가 내려주는 동앗줄은 적하효과(trickling-down effect)를 통한 떡고물밖에 없다.현재 보여주고 있는 20대들의 보수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아야만한다. 그들에게 남은 길은 이명박이건 전대갈이건 누군가 엄청난 대박을 터뜨려주어서 자신도 한몫 낄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들에게 ‘민주화’ ‘조중동 척결’ 등의 구호가 얼마나 호소력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들 집단을 포섭하지 못할 경우 정권교체는 가능할까? ‘민주개혁세력 대동단결’은 20대에서 부터 무너질 공산이 크다.

6-B.
좀더 중요하게, 현재 40대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30대 집단을 잡는데 ‘민주화’ ‘조중동 척결’은 한계를 내장할 수 밖에 없다. 현재 이들은 지난해 부터 시작된 반 이명박 집회의 주력군으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른바 ‘개혁세력’의 지지를 가장 많이 얻고 있는 집단도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민주화 개혁 만을 원할까? 이들의 사회경제적 불만을 해결해주지 못할 경우 몇 년 후 주저없이 이명박으로 돌아섰던 386들의 전철을 다시 밟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보인다..과연 유시민 한명숙 노선은 이들의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6-C.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노무현은 무엇을 내세워서 지지자를 결집하려고 노력했나.

바로 정치 사회적 개혁이다. 그가 주장했던 조중동 청산 지역감정 극복 과거사 진상규명 등등은 강한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갖는다. 그가 사회경제적 이슈를 이 부분과 접목했을 경우라면 모르되, 대중과 유리된 정치엘리트들의 구호는 결국 추동력을 잃고 강력한 반발을 가져올 수 밨에 없다. 이쪽에서도 이데올로기나 집단적인 열정을 그만큼 쉽게 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말이다.

결국 노무현의 정책은 현실에서 별 추동력이 없는 극단적인 이념투쟁의 형태를 띄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기는 커녕 큰 반작용을 나았다는 점이다.

사실 오늘날 이러한 노선을 추구하는 이들은 상당한 세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만큼 대중적인 추동력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과 같은 일종의 비상사태가 지나고 다소 ‘정상국면’이 찾아들어왔을 때 그들은 현재의 우세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다.

7.
노무현과 그 적자들이 이야기하는 “지역감정” 문제야 말로 그들의 해결책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보여주는 예다.아울러 지역감정 문제는 ‘민주개혁세력’의 집권 전략이 얼마나 허망한가, “새로운 대중 정치 세력”을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잘 보여준다.

소위 ‘지역감정’은 세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작동된다. 1) 전라도 지역에 대한 유사 인종주의 가 굳걷히 대중적 차원에서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2) 지역 명문고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 출신 엘리트 간의 자리 다툼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떡고물 이 동력이 된다.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의 배경에는 3) 서울과 지방 사이의 현격한 격차 가 자리잡고 있다.

지역감정이 주로 표출되는 방식은 지방 출신 엘리트간의 자리다툼이다. 경북고, 경남고, 부산고, 광주고, 광주일고, 대전고, 전주고 등 출신고를 중심으로 갈린 엘리트 집단은 흡사 조선시대 향촌과 재경 양반들 사이의 끈끈한 연계와 지연과 학연에 근거해 패거리를 이루는 양반 집단을 닮았다.이들 집단의 자리 다툼이 결국 지방의 발전, 즉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보조금과 개발정책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대중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현재의 ‘지역감정’은 위에 서술한 ‘지역 엘리트 간 경쟁구도’로만 설명할 수 없다.왜 전라도 지역은 그렇게 진보적인데, 경상도 지역은 그렇게 보수적인가? 왜 경상도는 그렇게 박정희에 목매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을 줄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지역감정’의 작동방식을 은폐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점에 대해서 강준만을 필두로 일군의 논객들은 지역감정이 실은 ‘전라도에 대한 차별’임을 증명한 바 있다. 사실 전라도 출신은 일종의 ‘유사 인종차별’을 받아왔다.본적이 전라도라는 이유로, 전라도 말씨를 쓴다는 이유로 기피대상이 되었고 대중극에서 깡패 건달 악역 등을 도맡아했다.본적을 전라도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 자녀들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지지 않도록 한 부모들의 사례를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대신 경상도 출신들은 극히 중앙집중적인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사투리’를 거침없이 공적공간에서 쓸 정도로 목에 힘을 주어왔다.미국에서 흑인과 WASP의 배역이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에게 주어진거라면 과장일까.

문제는 정치공간에서 ‘백인이라는 환상’이 경상도 지역 주민들에게 씌워진다는 점이다.사실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들은 인종차별은 백인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심리적인 보상 임금”을 안겨주기 때문에 공고해질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남부의 가난한 백인 소작농들에게 “나는 흑인과 다른 고귀한 백인이야”라는 환상을 불어넣어, 그들을 불만을 억누르고 기득권 백인 지주의 편에 서도록 만들었단 얘기다.남부 백인과 경상도 출신 유권자의 심리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그들이 한나라당을 찍는 것은 자기네들이 ‘고귀한 백인’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2)번 항 때문에 증폭되고 유지된다.TK 혹은 PK가 장악한 중앙 정계 혹 고위직은 이들 지역이 “그들 덕에 개발되었구나”라는 생각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자생력 없는 지방이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네 지역 출신 엘리트들을 무조건 지원해주어야한다.TK PK의 정당 한나라당이 그 대상임은 물론이다.게다가 70년대 박정희의 집권 이후 공고해진 경상도-중앙정계의 연결과 그로 인한 엄청난 경제발전 신화는 이를 지지하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결국 “나는 고귀한 경상도 출신이고, 그 때문에 박정희 각하가 영도한 경제발전의 큰 수혜를 입었으며 그 계승자인 한나라당을 지지해야한다”는게 한나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경상도 지역민 아니면 경상도 출신 사람들의 속내다.

이는 가난한 ‘흑인‘의 정당, 경상도 출신이 장악한 중앙정계에 대항하는 전라도 출신의 정당인 민주당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요컨데 “그 전라도 깽깽이가 주도하는 ’민주화‘ 따위는 개나 줘버려”가 경상도의 심리인 것이다.게다가 이러한 생각은 경상도가 점점 발전에서 멀어지면 멀 수록, 중앙정부의 ’개발정책‘에 대한 기대와 의존도를 높이기 때문에 점점 강화된다.

노무현은 이 지역감정에 대해서 두 가지 지점에서 대응했다. 1) 최대한 탕평인사를 통해 중앙정계에서 지역색을 누그러뜨린다 2) 지방개발 정책을 추진해 서울-지방의 대립구도로 전환한다 는 게 그것이다.

비극적인 현실은 노무현 정권의 ‘지역감정’에 대한 원인 진단과 해결책이 현실과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데 있다. 결국 노무현은 지방 엘리트간의 권력 다툼을 ‘탕평인사’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대중 정치차원에서 탕평인사는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중앙 정계에 자기 지역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지방민의 몰표는 인사가 공평하게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편파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와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요컨데 문제는 ‘자기지역 사람이 권력을 잡느냐’ 뿐이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대립으로 구도를 전환하는 것도 희망사항일 뿐인 정책이다.결국 지방의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중앙정부가 공기업 이전 수도 이전 등 각종 지역개발 정책을 내놓으면 내놓을 수록, 중앙정부에 영향력을 확보해야한다는 지방민들의 기대는 커져갈 뿐이다.게다가 그 수도권 지방의 대립구도에서 타깃은 누구였나? 지역감정 해소의 열쇠인 경상도는 그 혜택을 입지 못했다.오로지 충청도 지역에서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정책이 되었을 뿐이다.더욱이 수도권 민심의 확보문제까지 생각하면 더욱 문제다.민주당 ‘민주개혁세력’의 필승 전략은 경상도를 고립시키고 충청-전라-제주 서부벨트에 수도권의 ‘개혁적 시민들’ 표를 대동단결해 모으는 것이다.이 전략하에서 수도권-지방의 대립 구도는 추구할 수가 없다. 기껏해봤자 충청권 개발 계획이나 공기업 이전이 있을 뿐.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30%의 힘 중 절반 이상은 경상도에서 나온다.그리고 그 원동력은 지역감정이다.현재 구도를 흔들기 위해서는 경상도의 지역감정을 내파(impolsion)할 필요가 있단 얘기다.20대와 30, 40대에서 민주개혁세력의 동원능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더 중요하다.

문제는 지역감정 타파를 외친 유시민이나 기타 친노 정치인이 노무현이 제시한 정책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상도의 백인의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여기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결국 그들은 중앙정부의 힘을 이용해서 지방에 약간의 혜택을 더 배분하자는 것에서 더 나아가기 힘들다.

7-1.
이점에서 ‘피해대중을 결집한 새로운 대종 정치’의 가능성이 있다.지역감정을 진정으로 내파하는 길은 새로운 집단의식을 불어넣는 것이다. 진보와 개혁을 논하는 세력이 진정으로 정치권력을 잡길 원한다면 경상도라서 우월하다, 혹은 경상도 출신을 뽑으면 지역이 잘 된다는 막연한 환상을 부숴야만 한다.그리고 그 것은 ‘경북고 부산고 출신 나으리와 나는 분명히 다르다. 나는 차라리 전라도 출신 막노동꾼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는 일종의 ‘계급의식’이다.

8.
유시민·한명숙 등 친노 정치인이 대선에서조차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들은 30%의 보수지지세를 뛰어넘기 대단히 힘들다. 그것을 뛰어넘고, 해체하는 길은 친노세력이 제시하는 길과 완전히 달라야한다.

더욱이 1)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의 부차적인 문제로 축소하고 2) 정치적 ‘개혁’의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노무현 재임 당시보다 더 처절한 실패, 아니 대중 동력의 공회전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

‘공화국을 지켜야한다’는 깃발 아래 결집한 대중은 결코 한 마음이 아니다.그리고 친노세력은 그 서울광장에 모인 양떼를 몰아 민주개혁의 한 길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이미 지난 5년간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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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寒士

0.

노무현을 잇는 것은 누가 될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이후 노무현의 유지를 잇는 실질적인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가, 이 맥락에서 다음 대선 후보는 누가 되어야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정당을 찍어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산발적이지만 꽤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노무현은 왜 권력을 이명박에게 넘겨주어야했나? 단지 조중동의 왜곡 때문인가? 땅투기를 하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이 빚어낸 참극인가? 노무현의 몰락을 외부의 부당한 탄압과 (노짱을 지켜주는게 의무인) 우리의 배신 떄문으로 보는 것은 참으로 비과학적이고,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실패 원인을 반추해보기 위해서는 한 단어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로 386. 조중동식의 수사와는 별도로, 386이야말로 노무현 대중적 기반의 핵심이었으며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이들의 멘털리티를 규정해주는 말이다.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바로 386이라는 집단 전체의 실패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의 적자들이라 일컬어지는 유시민과 친노를 지지하면 세상이 좋아질꺼야라고 주장하는 주장은 철저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노선이다.

통치에서의 실패를 넘어서, 대선에서 실패할 가능성 조차도 높다.

자 그럼, 노무현에 대한 추모는 잠시 접어둔 채 노무현의 실패 원인을 반추해보자.

1.

한국 ‘대중’ 정치에 있어서 핵심은 30~40대 수도권 남성, 특히 화이트칼라 남성이다.어느정도 안정된 중산층 집단의 기간이며, 스스로 여론을 조직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더욱이 (가장 중요하게) 이들이야 말로 지역구도로 고착된 정치 전선에서 결정권을 쥔 집단이다.더욱이 이들은 규모마저 다른 인구집단을 능가한다.따라서 한국정치의 선택은 이들에 달려있다.이명박과 노무현 두 사람 모두 이들 집단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특히 노무현은 ‘개혁’을 주장하였지만 어떠한 유의미한 후계집단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모두가 몰락하게 되었다.가카의 등극은 불임의 보수가 구시대적 ‘성공신화’의 복제에 몰두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지금 보여주고 있듯이 경찰력외에 남은 것은 별로 없다.극과 극인 것 같지만 둘다 좌우파 포퓰리즘의 필연적인 말로다.

1-1.

시계를 돌려 2001년 민주당 경선으로 되돌아가보자. 노무현이 선택된 것은 당시 위기의 민주당 개혁세력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이상 지역 간 동맹형태로 집권을 바랄 수도 없었다.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수도권 30~40대 유권자 층의 등장 때문이다.이들의 표를 잡지 못하면 충청-전라-제주 등 ‘서해안 벨트’를 장악한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50대 이상은 지역블록의 영향력하에 있는 이들이었고, 인구학 적으로도 이들 연령대의 수가 가장 의미가 있었다.더욱이 충청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서 경쟁력있는 후보를 내세워야만 했다.

또한 김대중도 당시 인기가 없었다. 흔히 진보진영이 민주당 계열을 비판 할때 사용하는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정책은 김대중에서부터 시작이다.이들에게 ’좌회전 깜빡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이들의 기원인 신민당 그리고 그 기원인 민주당, 한민당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지 않아도 명확한데, 이들을 ’개혁적 이념을 담지한 운동권스런 정치인‘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이들 집단의 주류는 안정된 자본주의의 작동을 환영하는 중간계급 정당을 지향하지 절대 ’개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거기에 이들은 대다수는 특정지역에 기반한 엘리트와 연관되어있다.’재야‘를 끓임없이 수혈해 마침애 ’386정치인‘이라 이름붙일 정도로 수가 많아졌지만, 이들 대다수 또한 주류의 경제관을 좇을 뿐 제대로된 사회경제적인 아젠더를 구축한 적이 없다.따라서 IMF 이후 쌓인 대중의 불만을 통제하는데 당시 민주당 계열 누구도 역부족이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 진영에서 고질적인 예의 그 “인물이 없다”는 논의가 단순히 일시적인 차원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위에서 서술한 민주당의 스탠스에서 대중의 ‘개혁 열망’을 담지할만한 정치인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대중동원력을 갖춘 정치인은 대개 당 외곽에 존재하는 이단자(그야말로 매버릭maverick) 중 몇 명이 있을 뿐이다.이들이 대선에 경쟁력이 있을 정도로 잠재력이 있는지는 그야말로 불명확하다.경선에서 부터 선거 당일 까지 그가 써내려갈 드라마가 얼마나 대중을 동원해 낼 수 있을지에 따라 달려있을 뿐이다.물론 그 매버릭이 실제 얼마나 개혁적일 수 있을지는 집권 후에도 미지수에 남으며, 선거 기간 동안 화려한 개혁의 공약은 빛바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고민에서 광주에서 선택된 것이 노무현이다.노무현이 선택받은 것은 그를 선택하지 않으면 김대중 시기 구축해놓은 일종의 ‘선거 블록’이 해체되고 호남당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는 전남 지역의 공포 때문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게다가 노무현은 당시 만들어지고 있던 ‘386’정치세력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구 학생운동세력이 가지고 있던 자원과, 그들에게 공명하는 유권자 층을 결집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 논쟁에서 이기고 결국 최종승자가 될 수 있었다.

노무현은 1) 386로 대표되는 구 운동세력의 자원 들 - 이념, 조직, 인맥 등 -을 핵심적인 동력으로 해서 2) 수도권 30~40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개혁’ 아젠다를 내세웠다. 3) 이들은 “기득권을 타파하자”는 구호를 내세웠는데, 그 기득권은 경제권력이 아니라 정치권력이었다.기득권의 탄탄한 하부구조인 경제가 아닌 정치구조 (그리고 그 최상부에 있는 언론권력)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내세웠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386에게 있어 사실 경제구조는 타파의 대상이 아니었다.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 고성장의 마지막 시혜자가 바로 386이었기 때문이다.이전의 연령대와 다르게 386은 한국 사회의 규칙이 정해진 이후 성장해 그 규칙에 익숙해져 있을 뿐더러, 97년 외환위기 이후 해체되어가는 그 ‘낡은 규칙’의 마지막 수혜자이기 때문이다.오히려 그들은 그 구조를 이용해서 경제사회적으로 상승할 기회를 노리는 세대라고 보는게 적절하다.

1-2.주류 중의 주류, 이회창이 패배하고 난 뒤 보수세력의 고민은 어떻게 수도권을 공략할 수 있는 가에 맞추어진다.더이상 반공과 경제개발과 지역감정이라는 부정한 삼위일체로 집권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여기서 충청이 그들 손아귀륽 벗어난 점은 결정적이었다. 명실상부하게 민주당세력이 ‘호남당’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에 서술했던 것처럼 수도권 30~40대. 5년이 지난 지금 40대(예의 그 386이다)를 공략해야할 필요가 한나라당에서도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먼저 미국 공화당, 아들 부시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세금폭탄’으로 결실을 맺었던 레토릭 조작, 좌우파이념논쟁 기독교 등을 동원한 문화전쟁 등 전술적인 부분과 함께 감세를 핵심 아젠더로 삼는 경제적인 전략을 차용했다. 아울러 뉴라이트라고 일컬어지는 대중운동을 조직했다.한마디로 “대중정당”으로서 자신을 변신시키려고 움직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이 모색하던 대중운동은 몇 가지 전술적인 개선 이외에 특별히 의미있는 운동을 창조하는 데 실패했다.이는 대한민국 보수가 사실 이념적인 데에서부터 파탄나있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기껏해봤자 안병직, 이영훈이 주축이 된 낙성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한 근대사의 재해석, 박효종을 중심으로 한 70년대 국민 교육헌장의 재생 등 만이 있을 뿐이었으니까.변희재 등을 고용한 포탈/미디어 비판그룹, 우파 군사매니아를 동원한 안보 NGO 강화등 대중운동도 모색되었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어떠한 새로운 이념도 조직도 창출해 내지 못한 게 보수세력의 문제였던 것이다.단지 낡은 술을 새 부대에 담아보려는 부질없는 노력이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보수세력에게 남은 선택지는 대중 선동이 가능한 레토릭을 찾는 것이었다.이명박이라는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가 선택된 배경은 이런 보수의 실패가 깔려있는 것이다.(대한민국에서 지방상고-고려대 출신에 주 경력이 현대가 하수인-하다못해 율사 출신도 아니다- 인 이를 주류로 보는 게 잘못이다.이는 대중정치에서 주류 보수가 얼마나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가 하는 그 반증이기도 하다)

이명박이야 말로 30~50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염원들, 즉 나도 경쟁사회에서 잘 살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몫 잡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는 희망이나 다름 없었다.정치인 자체가 메세지였던 거다.그렇다면 이 대중적인 공명은 노무현에 대한 지지와 차이가 어느 정도 있었을까.(대선때까지 시점에서) 노무현에 대한 지지와 이명박에 대한 지지는 어느정도 과장해 종이 한두장 차이에 불과했다.두 정치인 모두 수도권 30~50대가 가지고 있었던 열망의 어느 한 쪽을 보여준데 불과했으니까.그들에게 경제적 보수성과 정치적 진보성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의 당선이야 말로 한국인들에게 있어 뿌리 깊은 미시적 보수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제2의 노짱’을 꿈꾸려 서울시장에서 부터 대선 때까지 나설 노무현의 재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갈 것이란 근거이기도 하다.

2.그렇다면 이명박은 왜 호소력이 있었는가? 그리고 노무현은 왜 실패하고 말았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사회의 미시적 보수성이다. 한국인들은 입으로 개혁을 떠들어대지만 경제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이었다. 한나라당의 세금폭탄론에 대한 대중의 동의, 지주와 노동자간의 급격한 자산재배분을 야기하는 부동산에 대한 승인, 황우석에 대한 열광 등.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집단적인 수준의 경제적 규율에 익숙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힘있는 자의 규칙을 따른다.

그것은 일종의 적하효과(tricking-down effect)에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이다.국가의 경제적 번영은 결국 각 개인들의 번영와 연결된다. 부자의 기회는 결국 나의 기회다.이는 '어리석은' 시각이 아니라 지극히 '속물적인' 시각이다.넘쳐나 자기에게 돌아올 몫의 양과 질이 어떻게 결정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비록 몇 푼 안되는 이득이라도 그것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한국인들은 지지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경제적인 이득을 옹호하고, 부자의 세상을 옹호하게 되는것이다. 적하효과가 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히 보수적인 색채를 띈다.

왜 지금까지 분신한 노동자들의 죽음에는 침묵하던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는 애도가 넘쳐나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일부 좌파들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분신한 노동자의 죽음은 자신의 일이 아니다.문제는 그 사람이 해고당해 경제가 좋아지면 자기에게 떨어질지도 모르는 떡고물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좌파에 태한 타자화, 일상적인 ‘비국민화’가 가능한 것이다.끝까지 저항하는 '비국민'에게 남겨진 것은 전투경찰의 곤봉과 잘갈린 방패뿐이다.외부적으로도, 이라크 등에 대한 담론이라던가, 주변국과 전쟁을 해 핵을 떨어뜨리고, 영토를 점거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에 열광하는 모습은 것이 내외적으로 우리-적 의 이항대립 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풍경을 그려낸다.

하지만 노무현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개천에서 난 용의 거의 마지막 세대, 서민의 벗이 죽은 것이다.이는 자신의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이 없기에 자신의 고통으로전이된다.슬프지만 이 것이 진실이다.그리고 용산 참사에서 보여주는 대중의 감성 변화가 대중의 멘털리티 변화라는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극단적인 노무현 지지를 보이는 서프라이즈, 개념있고 시크한 도시 중산층을 표방한 딴지일보 등에서 황우석 찬가가 울려퍼졌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미시적으로 경제적인 보수성으로 확고하게 결합해 있는 남한사회는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얻으며, 평범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가? 그리고 거기에 수반된 윤리적 문제는 무엇인가? 몇백만원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난자를 팔아야하고, 몇십만원에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려야하는 이들에 대한 고려는 없다.단지 수조원대의 경제적 이득을 탐하고, 그것을 이데올로기 심급에서 매끄럽게 접합시키는 애국주의가 중요할 뿐이다.결국 이명박에 대한 열광의 전주곡은 바로 황우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메가 프로젝트’에 대중이 열광하게 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가 깔려있다.이 기간 한국의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환율이 그렇게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성장하고 있고 품목 또한 빠른 구조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가 상당히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 일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실의 분배였다.대중과 언론이 '메가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모습은 기업의 성장은 단지 enclave적인(즉, 국민경제와 유리된) 일부 기업들의 실적이기 때문이다.현재의 구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는 이상, 대중들에게는 사회전체적으로 무언가가 터져서 자신들의 고단한 처지가 개선될 것이라는 환상만이 남겨져있을 뿐이다. 언론 또한 사회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을 알 고 있으며, 그럴 때 일수록 그들이 열망하는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보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 대중을 배반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캐들어 봤자 광고만 끓어진다. 그리고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훨씬 더 잘 팔리지 않은가. -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과 대중의 기대는 자꾸 자기재생산 되게 된다.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똑같은 거 한번 달리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게 대중의 심리가 아닐까? (저소득층에서 이명박 지지율이 높은 것에 대해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기 전에, 이러한 측면을 먼저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은 경제적인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재벌과 유착이 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이 자신에게 이득으로 돌아오는 한, 약간의 투덜대는 것 이상의 행동을 취할 의향이 없다.

특히 386은 절대로 ‘경제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성공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무슨 까닭으로 질서를 뒤흔들 생각을 하겠는가.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정치엘리트의 교체, 늙은 이들이 해쳐먹지 않는 세상을 바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이 제아무리 개혁적인 들, 재벌과 강부자의 세상을 바꿀 힘 따윈 없다. 아니, 이전 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바로 그가 담지하는 시대 정신과 주된 지지세력이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결국 노무현은 세상의 질서를 바꿀 힘 따윈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중동이니 낡은 정치문화니 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찬반을 나누었던 것이다.그리고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단지 정치판 놀음이었을 뿐이었기 떄문이다.노무현 실패의 진정한 원인은, 수구기득권의 저항 이전에 애초에 386이 의도했던 대중동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이명박이 내세운 깃발이고 거기에 대중들이 호응을 보냈던 이유이기도 하다.사실 이명박이 나선 지난 대선에서 그 어떤 반이명박선동도 통하지 않은 이유는, 대중이 어리석어서라기 보다 이 강력한 믿음이 유지되는한, 다른 나머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적인 로직이 그대로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명박이야 말로 한국 ‘잡초’의 성공이면서, 누구나 70년대초~97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닥다리를 다시금 올라탈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했다.그리고 그 아래에는 넓어지는 균열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대중의 절망이 깔려있다.

결국, 이명박을 탄생시킨 것은 노무현, 그리고 386이다. 이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대선 부터 장담할 수 없다.

3.

하지만 여기서 균열이 발생한다. 우리의 가카가 지난해 6월 촛불시위 때 그토록 당황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히게, IMF 이후 한국에서 더 이상 적하효과에 대한 기대가 희미해져 갔다. 노무현 집권 5년간 한국사회는 사회경제적으로 급격히 분단되어갔다. 강남과 비강남 서울과 지방 자본가-지주와 노동자 등등으로. 그야말로 ‘피해대중’의 등장이 노무현 집권 5년간 이루어졌다.

더구나, 한국사회에 구축된 계층상승의 길이 무너졌다는 걸 많은 이들이 느끼게 됐다. 특히 어느정도 잘 교육받고 사회에서 상층노동계급-특히 평범한 대기업 사무직들-에 속하는 이들에게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교육영역에서 머니게임화는 엄청난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점이 중요하다. 386 중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갖췄던 이들은 한국사회구조의 마지막 수혜자였지만, 그 외 다른 이들은 문이 닫히면서 엄청난 좌절을 느껴야했던 것이다.그리고 386세대의 후계자들은 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촛불시위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지지광고를 동원했던 수많은 인터넷 동호회들은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2004년 탄핵직전의 노무현 정권이 직면한 지지율 급락은 그 ‘균열’에 대해서 노무현 정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당시 노무현정권의 지지율은 30%대로 하락했다. 바로 부동산 때문이었다. 강남 지역의 부동산이 급등하고, 이는 서울 지역 다른 부동산 까지 파급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여기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집권 후반기에 그나마 제대로된 규제정책을 내세우기 전, 그가 이 시기 동안 발표했던 규제방안들은 경제학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 일색이었다.오히려 정부정책이 정부 정책가 부동산가격 상승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부추겨 오히려 가격을 더 뛰게 하는 역효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중간계급의 집단 거주지로서 가지는 강남의 상징성은 이부분에서 엄청난 좌절감을 많은 이들에게 가져왔다. 아무리 평생동안 근면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도 중간계급에 속할 수 없다는 분노, 자신의 노동소득이 돈이 많아 집을 샀다는 이유로 지주에게 들어가야한다는 분노, 그리고 그런 사람이 개혁을 담지한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

탄핵이 아니었으면, 노무현 정권의 불안은 계속 심해졌을 것이다.당시 노무현이 탄핵이란 벼랑끝 승부를 택한 것은 이런 배경 떄문이었다.민주당 접수에 실패한 뒤 분란 끝에 결국 따로 살림을 차린, 진정한 노무현 정당의 지지율은 그들이 '잔민당'이라고 비하하는 세력보다도 낮았다. 막상 나가면 '개혁세력'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원내에서의 강력한 의견그룹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빗나간 셈이다.결국 대안은 ‘공화국’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하는 수밖에 없었다.그가 당시 민주당 협상파들에게 움직일 여지를 거의 주지 않고 밀어붙였던 까닭이다.결국, 노무현으로서는 ‘민주개혁’ 이라는 뽕을 약발이 떨어질때마다 계속 주입해서 지지율을 유지시키는 길만 있었을 뿐이다.그리고, 이는 결국 임기 말 모두다 잘 알고 있듯이 파탄났다.

노무현 정권이 이 ‘균열’은 이명박의 당선을 가져왔다.노무현 정권시기에 심해진 양극화는 ‘마지막 기차가 떠나는 마당에 빨리 올라타야한다’는 대중의 조바심을 키웠다.이는 이득에의 기대라기 보다는 탈락에의 공포에 가깝다.또한 ‘진보’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키웠다.진보가 표방한 집단적인 해결책의 전망에 대해서 노무현 정권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다만 ‘좌파 신자유주의’가 표방하는 미국식 사회경제에 대한 청사진 밖에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하나라도 키워주겠다는 이명박의 공약은 진정으로 달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에게도 양날의 검이었다.그는 ‘대박에의 희망’을 내걸며 대중을 선동하는 데마고그였을 뿐, 그것을 어떻게 실현가능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전혀 없다.그가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자 발버둥 치는 것은 이 독이 안에든 당의정을 삼킴 후 그가 택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이명박 정권은 당선 당시에서 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더욱이 이명박은 개혁을 내세워 지지자를 결집하려고 했던 노무현과 달리 아무런 정치적 수단도 없었다.따라서 그는 경찰력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그리고 이는 그의 정당성을 점차 깎아나간다.

보수세력이 현재 위기를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어떠한 유의미한 변화도 낳지 못한 보수가 택한 우파 포퓰리즘적 해법이 이명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는 지금 보여지듯 파탄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그리고 그들에겐 출구가 없다.2002년 대선 패배 후 울려퍼졌던 ‘보수 쇄신’의 목소리 마저 들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포퓰리즘 해결책도 불가능한 현재 상황에스 보수 세력이 택할 ‘대중 정치’ 상에서의 답안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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