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래저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관련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바로 서점에 주문을 넣지 않았다.어차피 내가 급히 봐서 책을 봐야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신문사들이 연달아 광고 게재를 거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서점에 달려가 사왔다. 대한민국의 주류 사회가 강요하는 "삼성에게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게도 좋은 것이다."는 사고 방식에 대한 소시민적 저항이랄까. 그리고 그날 저녁 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은 미친듯이 재미가 있었다. 

새벽까지 날을 새워가며 읽었을 정도다.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기업 집단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보여준 유일한 저작이나 마찬가지라 엄청나게 유익하기 까지했다.

책을 구해 읽은 주변인들의 반응도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생업에 바쁜 직장인들도 다들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을 하루나 이틀만에 읽어제꼈다.지인 한 명은 공무원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고라 등지에 책을 추천하는 글을 써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노라 이야기했다

이 쯤되면 아시겠지만, 이 포스팅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노골적인 찬사다.삼성이란 기업집단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권력의 심층부에 있었던 이의 이처럼 솔직한 고백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그리고 그 삼성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이처럼 잘 보여주는 책도 보기 힘들다.이병철 전 삼성회장 탄생 100주년을 전후해 언론들의 노골적인 삼성 빨아주기에 대한 호쾌한 반격이기도 하다.이런 점에서 이 책을 ‘전국민의 필독서‘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더이상 중언부언할 것도 없어보인다.그냥 가서 사 읽으시라는 말밖엔 할말이 없다.다만 책 내용을 약간 옮겨본다.스포일러 당하기 싫으시면 이쯤에서 창 닫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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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출판사에서 만들었던 광고 시안이다. 신문사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 광고를, 신문사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게재 거부했다. capcold 님의 발의로 시작한 광고 시안 포스팅 릴레이에 뒤늦게 동참한다. 관심있으신 분은 함께 해주시길)



군사정권 시절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다면, 이제는 ‘반기업적’이라는 낙인을 모두들 겁낸다. ‘반기업적’인 법률가라는 소문이 나면 우리사회 주류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마치 과거에 ‘용공 분자, 빨갱이, 월북자 가족’등의 낙인이 찍힌 사람이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한 것과 닮았다. p.390
OJT를 받으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삼성전자 수원 공장의 가전 부문 조립 라인을 꼽고 싶다. 여성 생산직, 남성 생산직이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혹시 배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정도였다.또 복도는 전등이 희미하여 앞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화장실에서는 손 닦는 수건이 없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손수건으로 닦도록돼 이었다.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깨끗한 공장 풍경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북한에서 외부인이 구경하는 평양 거리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의 환경은 엉망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외부에는 ‘지상 천국’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싶기도했다. p.122


삼성에서 회장 지시사항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내린 교시와 비슷한 위상을 갖고 있다.내가 삼성 구조본에서 일하던 시절, 구조본 팀장만 접속할 수 있는 비밀 파일이 있었다.여기에는 회장 지시사항에 대한 이행 실적, 에정 사항 등을 기재하도록 돼 있었다. 삼성에서 회장 지시사항은 헌법 이상의 권위가 있었고, 구조본 팀장들은 이행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 보고해야만 했다. p.41

이런 서류에 이건희의 결재란은 따로 없다.이건희이 결정은 도장이 아니라 말로 전달된다.이건희의 구두 지시를 받기 위해 이학수와 김인주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p.232

구조본 공식 문서에 ‘이건희’, ‘회장’ 등의 표현을 직접 쓰는 경우는 없었다.이런 표현을 직접 쓰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이건희라는 말이 들어가야할 자리에는 대문자 ‘A'가 쓰였다.이건희의 부인인 홍라희가 들어가야할 자리에는 A자 옆에 작은 점을 찍은 ’A`'가 들어갔다.이건희 일가에 대해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은 ‘JY' 큰 딸인 이부진은 ’BJ' 작은 딸인 이서현은 ‘SH';라고 적곤 했다.봉건제 시절 중국에서는 공문서에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함부로 쓸수 없었다고 한다.그런데 이런 관행이 21세기 민주사회에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이다. p.145

이재용과 골프를 몇 번 친 적이있다.이재용은 골프를 무척 잘쳤다.허리가 안 좋아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사람이 어쩌면 그리 골프채를 잘 휘두르는 지 나는 늘 의아해하곤 했다.골프 관련 명품에 꽤 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이재용이 입은 골프복이나 신고 다니는 골프화는 나도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이건희, 이재용 부자가 입고 다니는 옷은 이런 경우가 많았다. p.244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해 이재용은 안타까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없었다.자신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그날 그는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는 모든 기업이 공공연하게 갖고 있는 것인데 왜 삼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짜증스러워 했다. p.253





삼성은 이날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사장단 물갈이를 했다. 60대 이상 고령 경영자를 뒤로 물리고, 50대 신진을 경영일선에 배치한다늠 여목으로 이루어진 인사였으나, 실상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기초작업에 불과했다.삼성 사장단의 면면을 잘 아는 이라면 이번 인사를 보며 느꼈을 게다.윤종용, 이기태 등 조금 억세다 싶은 사람은 다 물러났다.대신 이건희 일가에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대거 발탁됐다.

또, 사살 최대 규모 물갈이 속에서도 삼성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승진했다.삼성 특검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차명 게좌 거래 사실이 확인돼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던 대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이 당시 인사에서 삼성정밀 화학 사장으로 복귀했다...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연루돼 기소된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은 삼성 토탈 사장이됐다. 삼성의 정보수집과 로비업무를 총괄했던 장충기 전 전략기획실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서 삼성 브랜드 관리위원장을 맡게 됐다.황백 제일 모직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때다. p.100




삼성을 이해하려면 ‘실’을 알아야 한다. 이학수, 김인주 등 삼성 그룹의 실세 노릇을 했던 자들 역시 모두 ‘실’에서 근무했다.회장 비서실을 줄여서 ‘실’이라고 불렀는데,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실’이라는 이름은 게속 쓰였다.‘실’이라는 이름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던지 구조조정본부 시절에도 따로 회장실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이학수 부회장은 회장실장과 구조조정본부장을 겸직하여 ‘실장’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실’ 임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그들은 삼성 회장 비서실이 대통령 비서실을 능가한다고 믿었다.그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삼성 비서실을 흉내 내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실제로 삼성 내부 문서양식은 정부의 보고문서와 거의 같았다.내가 공무원을 하다가 삼성에 가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비서실, 또는 구조본 직원이 게열사에 전화하여 “여긴 ‘실’입니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계열사에서 무리한 지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때 책임을 면하려고 ‘실 지시에 의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공정위 등의 조사에서 자주 문제가 됐다.p.137

언론사 사장이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보고받자마자 기획팀으로 알려주는 일도 있었다.삼성 관련 첩보를 접한 검찰 고위 간부가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고 곧바로 전화해서 내용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p.138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로 바뀐 뒤, 공식적인 회의체로 구조조정위원회, 수요회, 팀장회의가 있었다...구조조정위원회는 비서실 시절에는 운영위원회라고 불렸는데 월 1회 열렸다.형식적으로는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했다...수요회는 사장단 회의인데 60여명의 그룹 사장들과 구조본의 팀장들이 삼성본관 28층 대회의실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 8시에 교양 강연과 공지 사항을 듣고 헤어지는 모임이다...별로 특별한 것을 논의하는 자리도 아닌데 고가의 첨단시설이 설치돼 있고 강사의 강연 내용만이 아니라 청중인 사장단의 반응까지 녹화되고 있어 졸리더라도 참아야했다.간혹 이학수 실장이 사장들에게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었다.하지만 “직장 생활 3년이면 침묵이 상책”이라는 것을 이미 열번 넘게 깨달은 사람들이라 그저 과묵할 뿐이었다.진대제 사장이 미리 준비한 듯한 발언을 가끔 했는데 역시나 그는 회사를 일찍 떠났다.

삼성에서 계열사 사장은 사실상 ‘얼굴마담’이다.삼성그룹은 60여개 개열사가 있고 각각 다른 법인체지만 ‘실’이 운영하는 사실상 하나의 회사라고 볼 수 있다.주요 결정은 모두 ‘실’에서 이루어졌다...한국이 월드컵 준결승전에 진출했을 때의 일도 좋은 예다.당시 삼성그룹 전체가 경기 중게방송 시청을 위해 오후 휴무를 했는데 그 결정 역시 ‘실’ 그러니까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이루어졌다.한나절 휴무 여부조차 계열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없는 구조였다...10~20억원 단위의 사원 복지 기금을 내는 것도 구조본 눈치를 봤다...실제로 삼성 사장단은 100억원 대의 투자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모든 투자 결정은 비서실에서 한다.계열사 사장을 임명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인사 역시 구조본에서 결정했다.삼성 전 계열사 임원의 인사 및 급여 결정은 구조본에서 이루어졌다.계열사의 재량권은 전혀 없었다.임원 인사를 위해 구조본은 전 계열사의 부장 직급(M2)을 관리했다.임원에 대해서는 인사파일이 따로 있었다.인사철이 되면 각 계열사 사장의 최고 현안이 자기 회사 임원 정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었다. p.140~143

형사 문제 등 책임을 져야할 문제가 있을 때는 ‘실’의 임직원 보호가 계열사의 사장 보호보다 우선시됐다...‘실’의 경비 사용은 그룹을 위한 것으로 여겨져서 신성불가침이었다.‘실’ 고위 임원너이 비자금으로 연예인과 윤락행위를 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막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다.“관계자에는 돈을 주라”는 이건희의 지시와 달리 ‘실’ 임직원의 급여 수준은 늘 그룹 내에서 최고 수준이었다.‘실’ 임직원의 급여와 상여금 역시 ‘실’이 결정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p.143

이재용은 하루라도 빨리 경영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이런 조바심에 편승해서 나온 결과물이 ‘e삼성’이다...이 사업은 순식간에 망했다. 이 과정을 초기부터 정리단계 까지 주도한게 김인주 였다.다른 임원들은 관여할 여지조차 없었다...‘e삼성’의 실패가 갖는 의미는 컸다.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지원했지만 자동차 사업에서 실패했다.이어서 그룹차원의 지우너을 한 사례가 ‘e삼성’인데 그것도 실패했다.‘자동차도 망하고 벤처도 망하는 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원래는 100억원만 날려도 책임을 져야하는데 김인주가 주도한 일이라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e삼성’의 핵심은 인터넷 사업인데, 이성주가 실무를 주도했다....이성주와 그가 이끄는 팀은 이번 기회에 이재용에게 인정박도 출세하겠다는 야심이 넘쳤다...이재용은 이성주 팀 소속 과장들과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술자리를 가지면서도 ‘e삼성’ 관련 회의에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재용의 이런 태도가 과장들의 도덕적 해이를 더 부추겼다. p.203


한때 LCD 사업의 전망이 좋다는 보고가 올라왔다.그러자 이재용이 LCD 사업을 자신의 경영실적으로 삼고 싶어했다.그래서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이재용을 S-LCD(삼성과 소니의 합작회사) 이사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안건이 올라오면 팀장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그저 ‘로열패밀리’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곤 했다. p.148




이건희는 종종 시시콜콜한 사항을 지시했다.이건희의 누이가 경영하는 웨스턴조선호텔의 입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서비스 정신이 뛰어나니, 스카우트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도 있다.당시 그 직원너을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한채 사주고 데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그 여직원은 호텔 신라 여직원들을 상대로 특별한 서비스 교육을 했다.

황당한 지시도 있었다. 삼성 냉장고의 월간 판매 실적이 LG에 뒤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건희는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원 쯤 에어컨이나 냉장고 등 냉공조 사업부에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줘서 LG가 망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p.150


삼성에서 자동차 사업 다음으로 큰 투자 손실은 미국의 망해가는 컴퓨터 회사 AST를 인수해서 1년만에 1조3000억원을 날린일이다.인수하고 보니 유럽 등에서 판매한 AST의 노트북 등에 대한 무상 서비스 비용을 게산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p.266


삼성항공에서 헬리콥터 제조업을 한 적이 있다.이건희의 지시 때문이었다.이건희가 “내 친구들한테만 팔아도 상당히 팔겠다‘고 하면서 만들라고 했다는 게다....당시 만들고 있는 게 단발엔진 헬리콥터였는데 영하 십도만 내려가도 엔진이 서버렸다.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려면 15년쯤 걸릴 거라고 했다.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회장의 지시 때문에 억지로 사업을 끌고가는 형편이었다.결국 사업을 중단 시켰다.마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들어진다기에 거기에 팔아 넘겼다. p.267


이건희는 계열사 사장들에게 해외 명품 업체를 인수하라고 독려했다.인수한 명품 업체의 수가 실적에 반영됐기 때문에 사장들은 실사도 하지 않고 업체를 인수했다.‘묻지마 인수’ 경쟁이었다.SLR이 뭔지 모르는 사장이 명품 카메라 업체를 사겠다고 나섰다.이렇게 인수한 회사에서 그는 카메라가 왜 이리 무겁냐며 플라스틱 재질 카메라를 만들라고 했다...이미 한물 간 명품 업체를 인수한 경우도 있었다. 부실 덩어리 업체를 인수해서 두고두고 곤욕을 치른 경우는 흔했다.

독일의 명품 카메라 회사인 롤라이를 1000억원에 인수해서 100만원에 판 일이 있었다...일본의 공업용 현미경 제조업체인 유니온 광학을 인수햇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이 회사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일본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회사를 청산하는 수 밖에 없었다.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이회사에 이재용의 돈이 10억원 가량 투자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재용의 돈을 날릴 수 있다”는 보고를 할 수 있는 ‘간 큰 간부’가 당시 삼성에는 없었다.그래서 회사를 청산하지 못했다...결국 어느 싱가포르 회사에 헐값에 넘겼다. p.250

명품에 대한 이건희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사업은 흔했다.특히 기업에 남는게 삼성이 개발한 하이엔드 오디오 ‘엠퍼러’다....1997년 출시된 엠퍼러 스피커 가운데 염가형 제품 가격이 1000만원대엿다.무게는 100kg이었다...결국 시장에서 실패한 엠퍼러 시리즈는 삼성 임직원 들이 사들여야했다. p.251

이건희와 그 주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세계를 잘 몰랐다.이건희는 그게 경영자로서 약점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뿐이었다.이런 약점을 굳이 보완하려는 의지는 없었다.핏줄이 다른 귀족이라고 여기고 있던 그들은 보통사람들의 정서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p.252




다수의 예상을 개고 이부진이 오빠 이재용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삼성 주요 계열사를 장악하게 되면 삼성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이부진의 경영능력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그래서 전망하는 게 쉽지 않다.이런 질문 앞에서 어떤 이들은 인천공항에 있는 호텔신라 면세점 사업을 예로 들기도한다.이부진이 진두지휘한 이 사업은 심한 적자를 보고 있다.면세점 입주 계약과정에서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를 제시한 게 한 원인이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외환위기로 출국객이 크게 감소했다... p.241

서울대 미대를 나온 홍라희는 패션 디자인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해마다 제일모직의 여성복 디자인도 홍라희가 직접 결정해 준다.자기 나름대로는 자상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제일모직 여성복 사업부장은 매출 부진으로 연말이면 항상 회사에서 쫓겨나곤 했다.홍라희의 패션감각은 보통사람들의 그것과 워낙 동떨어져 있는 까닭에 홍라희가 골라준 디자인에 따라 옷을 만들면 도무지 팔리지가 않았다.그렇다고 홍라희가 고른 디자인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제일모직 여성복 사업부장 자리는 제일모직 임원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p.244


제일모직을 운영하는 이건희의 둘째 딸 이서현은 “100만원 짜리 옷을 만들어봤자 누가 입겠느냐”는 말을 한 적이있다.100만원 짜리 옷이 너무 비싸서 안 팔릴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그 반대다.너무 싸구려 옷이라서, 사람들이 입고 다니기 창피해 하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p.252

이건희 일가는 유럽 귀족 흉내를 몹시도 내고 싶어했다..이걸 굳이 규제할 근거는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개인적인 사치는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이들은 개인적인 파티에 회사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손님을 초대해 놓고, 손님에게는 주인보다 더 싼 음식을 제공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이런 무레한 태도의 배경에는 이건희 일가가 마치 왕족이나 귀족처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있다. p.225~230



아주 시시콜콜한 정부 방침까지 구조본 팀장 회의에 올라오곤 했다. 대표적인 게 ‘참여정부’라는 명칭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전 열린 팀장 회의에서 노무현 정부의 명칭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다. 당시 회의에서 ‘참여정부’가 좋겠다고 의논이 모아졌는데,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공식명칭이 됐다. 노무현 정부와 삼성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p.146

대한민국의 이익과 삼성의 이익, 그리고 이건희의 이익은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을 외면하는 자들은 삼성 바깥에도 많았다.그들에겐 삼성 임원 자리가 정부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벼슬’로 비치는 모양이었다.삼성이 공무원 로비 전용으로 쓰이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나와 골프를 쳤던 어느 검사는 나를 가리켜 “전관(轉官)했다”는 표현을 썼다.법원에거 검찰, 혹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길 때 썼던 표현이 ‘전관’이다.공직 사회 안에서 소속만 바뀔 때 쓰는 표현이다.그 검사에겐, 삼성 법무팀이 공직으로 보였나보다. p.132

그래서인지 이건희는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곤 했다.정부의 경제특구계획에 대해서 이건희가 사장단 회의에서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쩨쩨하게 너무 통이 작다”며 멸시하는 말을 한게 기억난다.“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이건희의 북경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실언이 아니고 소신 이라고 본다. p.146



실제로 청와대가 특검을 수용할 무렵, 청와대 관게자가 나를 찾았다. 그는 특별검사로 누가 적당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그러면서 그는 “정권을 물어뜯지 않을 사람”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관계자는 내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p.61

올해가 삼성왕국을 세운 이병철의 탄생 100주년이었다면, 내년에는 저 북의 김일성 수령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주체 100년' 이다. 2010년 현재 휴전선 남북 양쪽의 상황은 별반 다를바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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